● 줬으면 그만이지
● 김주완
책 말미에 '나는 김장하 선생의 10분의 1, 100분의 1에도 미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글쓴이가 만난 모든 사람이 그랬다 했다.
단 몇 페이지를 넘겼을 뿐인데 고개가 숙여졌다. 반성...해야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에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모자란 글솜씨를 뛰어넘을 만큼 '김장하'라는 분을 기억하고 알리고싶은 마음의 서평
(서평이라기보다 기록에 가깝다. 다른 설명이 필요 없기에 김장하 선생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는 일부분을 옮긴 글이니 책 읽기를 권합니다.)
문형배 재판관의 블로그 중 '선순환이 되면 공동체가 아름다워진다'는 데 공감하며
김장하 선생은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우리사회, 그 평범함을 지탱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신 분.
공!감!구!절!
삶의 지표를 정해준 할아버지
-일찍이 '사람은 마땅히 올바른 것에 마음을 두어야지 재물에 얽매여서는 안된다' -(P.33 영은재 기 중 )던 할아버지의 가르침
장학사업의 시작
-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되겠다 하는 것이고, 그리고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중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내 자신을 위해 쓰여져서는 안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
그의 나이 48세, 1991년 8월 17일 명신고등학교 국가 기증 선언 및 이사장 퇴임식에서 김장하가 한 말이다. 여기에 그가 장학사업을 비롯한 재산의 환원을 결심한 이유가 잘 드러나 있다.-(P. 105)
- 지금까지 취재한 바를 바탕으로 김장하 장학금의 특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장학금 수여식 또는 전달식을 하지 않는다. 당연히 사진도 찍지 않는다.
② 성적보다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우선하여 선발한다.
③ 가급적 1회성이 아니라 좋업할 때까지 전액 지원한다.
④ 등록금뿐 아니라 생활비 등 각종 결비까지 지원한다.
⑤ 드물지만 재수생에게 입시학원비와 하숙비까지 지원하다.
⑥ 살 곳이 마땅찮은 아이는 아예 자신의 집에 들여 함께 살면서 자식처럼 키운다.
⑦ 그런 기록 자체를 남지기 않고 누가 물어봐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그렇게 지원한 학생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다.
-(P. 117)
- 김장하 이사장은 교사와 직원 채용에 세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 친인척이나 지인은 쓰지 않겠따. 둘째, 돈을 받고 채용하지 않겠다. 셋째, 권력의 압력에 굽히지 않겠다.
-(P.162)
명신고등학교 공립 전환
이사장 퇴임 인사말
- 제가 본교를 설립하고자 하는 욕심을 감히 내게 되었던 것은 오직 두 가지 이유 즉,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은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되겠다 하는 것이고, 그리고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즉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내 자신을 위해 쓰여져서는 안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요건을 충족시키는 가장 좋은 일이 곧 장학 사업이 되었던 것이고, 또 학교의 설립이었습니다. 그런 사정을 전후로 해서 본 명신고등학교는 탄생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유에서 설립된 것이 이 학교이면 본질적으로 이 학교는 제 개인의 것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본교 설립의 모든 재원이 세상의 아픈 이들에게서 나온 이상, 이것은 당연히 공공의 것이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는 것이 본인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리고 본교가 공공의 것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공립화요, 그것이 국가 헌납이라는 절차를 밟아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P. 198)
- "내가 그때만 해도 한약방으로 돈도 많이 벌어 학교에 큰 도움이 되었을지 몰라도, 나중에 나이들어 그럴 형편이 못되면 괜히 사사로운 욕심이 생길까 두려웠던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나도 못난 사학 이사장이 되어 선생님들의 일에 이애라 저래랴 간섭하려 들거고, 그렇게 되면 처음 내가 학교를 세우려고 했던 첫 마음을 잃게 될까봐 두려웠던 거요. 교육이 사업이 되어서는 안되지 않겠어요. 사업을 하려면 다른 일로 해야지, 학교를 갖고 사업하는 마음으로 하면 큰일 나는 겁니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그냥 국가가 맡아 달라고 내어놓은 겁니다."-(P.203)
- 최관경 교수가 김장하의 삶을 이렇게 딱 정리해서 말했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무슨 뜻일까 찾아보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이렇게 나와있었다.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율바라밀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이 무주상보시는 「금강경」에 의해서 천명된 것으로서, 원래의 뜻은 법(法)에 머무르지 않는 보시로 표현되었다.
이 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내가 남을 위하여 베풀었다'는 생각이 있는 보시는 진정한 보시라고 볼 수 없다.-(P.331)
- "식자들이 말하기를 사람은 운명이 타고난다. 혹은 운명은 정해져 있다고 하지만 나는 운명을 바꾸며 살아왔다."
그리고 마무리 부분은 이렇다.
"결론적으로 애기하자면 내 운명을 바꾸며 살아온 일이 크게 두 자기가 있는데 그 첫째가 19살에 한약사 시험을 친 일이고, 두 번째는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ㄹ결심한 일이다. 지금까지 낸가 살아온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는 누구나 인생에서 희로애락을 겪게 된다. 하지만 '인생은 역경 속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결심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을 바꾸며 살 수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P.342 김장하 명예 문학박사 학위수여식 명예박사 인사말씀)
생활신조와 인생관
-김장하의 유일한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는 명신고등학교 교지《명신》창간호에는 학생기자의 질문 중 이런게 있다.
"이사장님의 인생관 혹은 생활신조를 알고 싶습니다."
그러자 김장하는 이렇게 대답한다.
"맹자의 진심장구(盡心章句) 에 나오는 군자삼락(君子三樂) 모두 알죠? 그 중에서 제 2락인 앙불괴어천(仰不愧於天) 하고 부부작어인(俯不作於人)을 나의 생활신조로 삼고 있어요."
풀이하자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고개를 내려 사람들한테도 부끄러울 게 없는 삶을 뜻한다.
-(P. 349)
- 나는 '생활신조'나 '좋아하는 말'이 아니라 '삶의 지침'이 뭔지를 물어봤자. 그랬떠니 또 다른 대답이 나왔따. 바로 '기소불욕(己所不慾) 물시어인(勿施於人)이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살아가면서 이것 하나만 지켜도 세상에 싸울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 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