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애 류성룡 위대한 만남

● 송복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채 신채호 선생의 말이 아니더라도 역사의 중요성은 재차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되풀이되는 역사를 보며 왜 우리는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가 안타까운 마음이다.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을 비롯한 그의 저술 역시 선대의 전철을 철저히 징계하고 후대의 후환을 철저히 경계시키고자함이나 그 뜻을 헤아리고 실천하는 후대는 얼마나 있을까.


<서애 류성룡 위대한 만남>의 저자는 이 책을 쓰는 두 가지 이유를 아래와 같이 밝혔다.
- 하나는 오늘날 한반도의 분한은 언제부터 시도되었는가 이고, 다른 하나는 그 분할획책을 누가 어떻게 막았는가 이다. 앞의 것은 한반도 분할의 원류를 캐는 것이고, 뒤의 것은 그 분할획책을 최후까지 막은 인물의 능력과 리더십을 보는 것이다. 조선분할과 리더십연구가 핵심이다.

-(p.3) 

- 조선을「할지割地해서 4도를 내놓아라」는 왜倭의 이 엄청난 요구는 토요툐미 히데요시가 왜 조선을 침략했는가에서부터 보아야한다. 그가 왜 1952년에 조선을 쳐들어 왔는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고, 그 많은 설중에서 아직도 의견이 일치된 정설은 없다. 그렇다 해도 대체로 그 설들은 세개로 압축된다. 하나는 도요토이 히데요시의 공명심과 정복욕이고, 또 하나는 그의 부하들(그들은 제후諸侯라고 불렀다)에게 나눠줄 영지의 필요성이고 그리도 또 하나는 그들 국내에 계속 증강돼 온 강력한무력들을 해외에 방출해서 신흥세력의 성장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중략)…
그렇다면 히데요시의 침략 이유는 그의 공명심과 정벌욕, 그리고 무엇보다 조선「할지割地」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입증하는 것으로 일본 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자료는 히데요시가 일본내의 주고쿠中國지방을 평정한 뒤 그의 구준인 오다 노부타가에게 보낸 글이다. 이 글의 요지는 「규슈를 다시 평정한 뒤, 그 병사로 곧바로 조선을 정벌하고, 나아가 명의 400여 주를 석권하여, 활국의 판도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쓴 것이 1577년이고, 이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5년 전이다. 이미 그때부터 그는 조선침약은 물론, 심지어는 명까지 정벌하겠다는 야욕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침략이 구체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7년 전인 1585년 7월, 히데요시가 관백으로 취임하고 나서부터로 보아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히데요시의 정벌욕과 조선할지割地」는 구분되는 두개가 아니라 하나이고, 명까지 석권한다는 그의 큰소리도 실은 조선할지」가 조선과의 대결이 아니라 명과의 대결리아는데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명 400여주를 석권한다」는 그의 큰 소리는 실제로 명을 정벌한다는 것이 아니라 조선을 흥정하기 위한 명과의 협상용 발언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 조선은 「명의 속국屬國」이고, 따라서 조선을 흥정하는 협상의 주최는 어디까지나 명이기 때문이다.

 -(p.322)


-1593년 2월, 제독 이여송은 평양으로 돌아가 주둔했다. 명목은 카토오 키요마사가 아직 함경도에 있고, 평양은 근본이 되는 땅으로, 이곳을 지키지 못하면 돌아갈 곳이 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우리 측의 명군 접반사 이덕형에게 일러 「조선군은 지금 형세도 외롭고 원군도 없으니」명군따라 모두 임진강 이북으로 철수하라고 명령했다.
…(중략)…
이에 류성룡은 이여송에게 급히 글을 보내 「군사를 절대로 물려서는 안되는 다섯가지 이유를 명백히 밝힌다.」
…(중략)…그 첫째의 이유는 유교국가에서 으레 말하는 「선왕 분묘를 지키는 일」이다. 선왕의 분묘들이 모두 경기도에 있는데 이를 왜가 몽땅 점령하고 있어, 「신과 사람이 다 함께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고, 그래서 차마 버려둘 수 없다」는 이유다. 이는 근래까지만 해도 「부모님전상서」에 「기체후 일향만강 하오십니까」정도의 예의이고, 다른 것이 회복되면 이는 자동적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따라서 핵심은 그 다음 이유에 있다. 이를 하나 하나 원문 그대로 보면,

㉠ 경기 남쪽에 남아 있는 백성들은 명군이 갑자기 물러갔다는 말을 듣게 된다면, 나라를 다시 굳게 지킬 생각이 없어져 적군에게로 귀의하게 될 것이다.

㉡ 우리 강토의 땅은 한자 한치도 적에게 쉽게 넘겨줄 수 없다.

㉢ 우리 장수와 군가들은 명군에 의지하여 함께 진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제 명군이 물러나 버리면 원통하고 분개해서 모두 흩어져 버릴 것이다.

㉣ 명 대군이 물러가면 후방은 모두 빈다. 그 빈틈을 적이 쳐들러오면 임진강 이북 지역도 보전하지 못한다.

-(p.296)

-당시 사람들이 이원익과 류성룡을 대비해서 하는 말 중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이원익은 가히 속일 수 있으나 차마 속일 수 없고, 류성룡은 속이려 해보아도 속일 수 없다.」이원익은 그만큼 순수하고 진실했다는 것이고, 류성룡은 그만큼 성실하고 명민했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사람은 아무리 유능해도 순수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고, 후자의 경우 사람이 아무리 명민해도 성심을 다하고 있지 않으면 얼마든지 거짓을 꾸며댈 수 있다. 인간은 영악한 동물이어서 얼마든지 남을 사기할 수 있지만, 지극한 「순수」, 지극한 「성심」앞에서는 마치 유리판에 구슬 구르듯 그 거짓이 굴러 나온다는 것이다. -(p.424)

공! 감! 구! 절!


- 조선조가 어째서 그토록 오래갔느냐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 …(중략)… 정치사회학적인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사회경제적 빈곤,그것은 절대 빈곤이다. 사회경제적 빈곤은 정치적 인물과 정책의 빈곤을 가져오고, 그 빈곤은 사회 모든 기능에서 다이내미즘dynamism을 잃게 한다. 다이내미즘의 상실은 곧 바로 정체로 이어지고, 정체는 오늘날 북한처럼 장기집권을 가능케 한다.
사회가 활력을 잃으면 잃을수록, 다른 말로 빈곤하면 빈곤할수록, 정권을 바꿀 에너지가 사회내부에서 생성되지 못한다. 반면 정권은 일정한 무력의 소지로 어떤 농민반란도 진압할 수 있다.

-(p.80) 

-역사에서 「가정 假定」은 의미가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만일 그렇지 않았더라면의 if not 방식」으로 역사를 「되돌아 보는 것」만큼 역사에서 더 많은 교훈을 얻는 방법도 드물다.
반대로 역사를 가정假定없이 「있었던 사실의 기록」만으로 이해하고 성찰해야 한다면, 그 이해와 성찰이 지금 이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조망하는데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미상불 역사의 이해든 현실의 이해든, 그 경우 그 이해의 폭은 더없이 좁아지고, 그 깊이는 더없이 얕아질 것니다.

-(p.254) 

- 조선사의 최대 미스테리는 왜 당시 조신朝臣들은, 그리고 재야의 선비들(지식인들)은 그토록 「자강自彊」을 향한 질문이 없고, 욕구가 없고, 고민이 없었을까이다. 왜로부터 명으로부터 청으로부터 그토록 학대받고 시달리고 짓밟히면서도, 어떻게 그토록 자기 반문이 없고 자기 몸부림이 없었을까이다. 어째서 왜는 그렇게 강하고, 어째서 청은 그 작은 소수민족으로 일어나서 대국 명을 무너뜨리고 마침내 중원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을까, 어째서 거기에 대한 치열한 자기 물음이 없고 자기도 일어서야겠다는 강렬한 자기 분기, 격렬한 가장에의 의지가 그토록 없었을까이다. 

 -(p.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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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사이토 다카시

 

통합적 지식인이 말하는 세계사의 큰 흐름

 

저자 사이토 다카시

메이지대학 문학부 교수. 도쿄대학교 법학부 및 동 대학원 교육학연구과 박사 과정을 거쳤다. 그는 교육학, 신체론, 경제경영학, 커뮤니케이션론 등을 기초로 통합적 지식을 담은 관련 서적을 다수 집필했으며, 최근 NHK와 테레비도쿄에 정기적으로 출연하여 특정 분야의 틀에 갇히지 않은 열린 시각과 날카로운 분석으로 수많은 마니아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 그의 관심과 노력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인문학, 그중에서도 역사에 대한 깊이 있고 통찰력 있는 분석과 연구로 나아간다. | 인터넷 교보문고 저자소개 참고

 

세계사를 움직이는 5가지 코드는 무엇일까?

1. 욕망

2. 모더니즘 - 서양근대화의 힘

3. 제국주의 - 야망, 남심(男心)이 만들어낸 ‘제국주의’와 제국의 흥망성쇠

4. 몬스터 - 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5. 종교 - 일신교 3형제(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욕망’이라는 코드를 통해 저자가 다섯 가지 관점을 어떻게 풀어가는지 간단히 살펴보자.

 

‘잠들지 않는’ 근대의 원동력이 된 커피와 차

-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것도 커피를 좋아하는 단순한 이유를 넘어서서 커피에 의해 각성한 의식이 경쟁이 치열한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커피가 가진 ‘잠이 오지 않는 속성’은 세계를 크게 바꾸어놓았습니다.

-(p.23)

 

금과 철이라는 물질

- 인간의 욕망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금’이 마음을 부추기고,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실질적인 힘을 가진 ‘철’이 이용되었습니다.

-(p.53)

- 아마도 철이 없었다면 문명은 지금과 같은 놀라운 발전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철이 없었다면 지구의 환경은 이 정도로까지 빨리 악화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p.55)

 

브랜드와 도시라는 동경이 만들어낸 세계사

-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문화예술의 중심이었던 곳은 브랜드가 되고, 경제의 중심이었던 곳은 브랜드가 되지 않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입니다.-(p.68)

- 우리는 ‘사람이 있는 곳에 가고 싶다.’는 본능적인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동물이 무리를 짓듯 하나의 생물로서의 욕구와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인간의 욕망을 대도시가 충족시켜주기 때문입니다.

-(p.71)

 

공! 감! 구! 절!

 

- "큰 문제는 연설이나 다수결이 아닌 ‘철鐵’과 ‘피血’를 통해서 결정된다.”-오토 폰 비스마르크

-(p.54)

 

- “우리는 기호를 소비하는 생활에 들어와 있다.”-장 보드리야르

-(p.58)

 

- 욕망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이성’입니다. 또한 권력을 손에 쥐었을 때 유전자라는 무한한 가능성을 포기할 결심을 하는 것은 ‘궁극의 이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170)

 

- 사람은 불안해지면 자신과 다른 것을 찾아내 배제하는 것으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하나가 됨으로써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p.233)

 

- 고대부터 세계사를 보면 인간이 자기 존재의 왜소함, 불안정함을 견디지 못하고 여러 대상에 의존해온 결과가 오늘날의문화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언어가 생기고, 문자가 생기고, 종교가 확립되고, 또 다른 방향으로는 과학의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다시 말해, 무질서를 견디지 못하고 질서와 안정을 원하는 인간의 감정이 이 세상에 ‘문화’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신을 갈망하는 마음이 수많은 다툼과 분쟁을 만들어낸 것도 사실입니다.

-(p.250)

 

- 그곳(예루살렘)이 단순한 영토가 아니라 ‘성지聖地’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단순한 영토 싸움으로 정리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종교상의 이유에서 절대 포기란 것이 인정될 수 없는 지역인 것이지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각각의 성지인 예루살렘은 일신교 삼형제가 직접 대결하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이 ‘형제싸움’이 세계를 혼란으로 몰아넣는 싸움의 커다란 ‘불씨’가 되고 있습니다.

-(p.286)

 

- 종교라는 관점에서 세계를 보면 종교적 대립이 전쟁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장애가 되어 분쟁이 해결되지 않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세계 역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그것은 종교 문제와 별개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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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이 순간의 역사 - 한홍구의 현대사 특강 2
  • 한홍구


소름 돋고 전율 느끼는 것은 비단 스펙터클한 영화에만 있는 것은 아닌가보다.
'한국이 얼마나 민주화되었느냐고 묻는다면, 노무현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만큼 민주화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다. 한국이 얼마나 민주화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노무현 같은 대통령이 벼랑에서 뛰어내려야 할 만큼 민주화되지 않았다고 얘기해야 한다.'는 책의 앞 부분을 읽으며 소름이 돋았다.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며 눈물을 흘렸고 이 책 <지금 이 순간의 역사>을 보며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 낸 그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그리고 묻는다. 나는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공! 감! 구! 절!

-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이란 게 길게는 수천 년, 짧게는 수년의 역사적 변화들이 축적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아야 할 미래는 바로 지금 만들어지는 것이죠.
-(p.14)

- 이 순간 어떻게 반응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일 자체라기보다는 현재의 관점에서 불러내고 해석한 과거입니다. 저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말을 좀 더 강조해서 '모든 역사는 지금 이 순간의 역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p.15)

- 도대체 1970년대와 비교해서 1980년대는 뭐가 달라졌습니까?
1980년대 세대들은 뒷일을 생각 안하는 바보인가요? 아닙니다. 다 알면서 그 짓을 했어요. 왜 그랬습니까? 생각이 광주에 미치면 그 다음부터는 계산이 안 돼요. 셈이 안 되는 겁니다. 1980년대 세대는 계산을 할 수 없는 세대였습니다.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도청에서 총을 들고 계엄군을 기다리던 사람들도 있는데 데모한다고 죽이기야 하겠어? 그 생각을, 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그런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돌연변이 변종즐. 그 사람들이 광주의 자식들입니다.
-(p.59)

- 역사에서 가장 암울하고 어두운 시기가 언제냐? 그것은 변화가 멀지 않은 시기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해 뜨기전이 가장 추운 것처럼요.
-(p.128)

-"공개적으로 정부에 옳은 소리로 비판"하고, "그렇게 못하는 사람은 투표장에 가서 나쁜 정당에 투표하지 않으면" 되고, 나쁜 신문 보지 않고, 집회에도 나가고, 인터넷에 글 올리고,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면서 여든 여섯 살 노인께서 연부역강한 젊은이들에게 "하루도 쉬지 말고 민주화, 서민경제, 남북화해를 위해 힘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특별한 유언을 따로 남기지 않았다고요? 그분은 온몸으로 유언을 쓰고 가셨습니다.
-(p.245)

- 우리 대중에게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저는 자기를 버렸을 때 나왔다고 생각해요. 대표적인 예가 광주 아닙니까? 첫 시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도청에서 광주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었죠. 그 사람들이 정말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아닙니다. 질 줄 알면서도 거기 있었습니다. 그리고 잘 졌기 때문에 바로 유산이 된 겁니다. 처절하게 잘 지는 것, 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잘 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p.323)

-우리 역사는 참 정직한 것 같아요. 대중이 흘린 눈물만큼 역사가 변했습니다. 우리가 싸운 만큼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말씀중에 정말 중요한 것이, "이기는 것도 쉽고 지는 것도 쉬운데.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반드시 진다."고 했습니다.
-(p.324)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우리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역사는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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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의 발칙한 지식인을 만나다
  • 정구선 지음

지은이의 말중 이 책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두 구절을 찾을 수 있다.
 '역사란 결국 권력의 추이와 그것을 둘러싼 투쟁의 기록이 아니던가'
 '이 책은 조선시대 처사들의 삶을 더듬어봄으로써 돈과 권력, 명예에 눈 먼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리 고, 경제적인 고통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그렇다. 지은이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OO실록>을 근거삼아 함으로
역사에 빗대어 가려운 곳을 속 시원히 긁어주는 느낌이다. 통렬하다!

책은 한 명의 처사의 고매한 인품을 알 수 있는 이야기와, 딸림으로 그와 관련한 역사적 사건이나
책을 읽는데 필요한 배경지식이 한 묶음으로 되어있어 16명 이상의 처사를 만날 수 있다.
이런 구성으로 처사의 높이 살 점을 배우고 역사적 사실을 통해 이해를 돕고,지식도 쌓을 수 있어 좋다.

어찌 이리 바르고 어질고 겸손하고 검소할 수 있을까?
효를 중시하고 항시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학문을 닦으며 실천을 중히 여겼던 처사.
가난을 벗삼아 끼니를 거르기 일수이나 임금이 하사한 음식을 마다하고
실력이 널리 알려져 천거되면 기꺼이 벼슬을 마다하며 오히려 직언을 아끼지 않고 상소를 올리는 그들.

대한민국의 발칙한 지식인은 어디있는가?

책 속 한 구절

임금이 관직을 내린 것을 조금도 고마워하지 않고 오히려 비판하는 것이다. 오늘날 공직자들이 조식의 위치였더라면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 무슨 조각이니 개각이니 하는 것이 단행될 때마다 사회의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혹시 청와대에서 전화 한 통 오지 않을까 목을 빼고 기다린다. 그러다가 장관이나 청장 직이라도 하나 받으면 감지덕지 그것을 챙기기에 급급하지 않은가. 자신의 분수를 헤아려서 내려진 직책을 사양했다는 말은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권력과 명예를 탐하는 무리는 자기가 그 자리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길 떄는 조식과 같은 기개로 그것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양심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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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인이야기.7: 악명높은 황제들
  • 시오노 나나미 지음

로마인이야기.7에서는 무려 4명의 황제를 만날 수 있다.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가 바로 주인공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제 4권과 5권을 통해 다룬 것에 비하면 분량에 차이가 있다.
그 이유는 '창조'와 '창조물의 유지,관리' 차이 정도가 아닐까싶다.

<티베리우스>

아우구스투스가 구축한 체제를 견고히 다지기에 딱 알맞은 인재였으며, 인선에서도 출신성분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제일주의로 적재적소에 인재를 발탁해 티베리우스의 뒤를 이은 황제때의 우수한 인재 모두 티베리우스가 발탁한 인물이거나 그들의 아들이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래는 역사 연구가들의 티베리우스에 대한 평가이다.

p.153
현대 연구자 가운데 한 사람은 다음 라틴어 격언만큼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어울리는 말도 없다고
주장한다.
"FATA REGUNT ORBEM! CERTA STANT OMNIA LEGE"
(불확실한 것은 운명이 지배하는 영역, 확실한 것은 무릇 인간의 재주가 관할하는 영역)

p.221
몸젠은 역사 저술로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사람이다. 이 몸젠이 티베리우스에 대해 내린 평가는
"로마가 가졌던 가장 훌륭한 황제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칼리굴라>

칼리굴라 '4년 치세를 채 채우지 못하고 30세도 채 되지 못한 젊은이'라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사람의 환영을 받으며 황제자리에 올랐지만 그 애정을 잃지않기 위해 벌인 행동으로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하는 칼리굴라.그의 치세는 국가 재정의 파탄을 낳았을 뿐 아니라, 외치에서도 여기저기서 균열을 낳고 있었다.

<클라우디우스>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은 탓에 볼품없는 용모를 지닌 역사 연구가 출신의 50세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원로원 회의에도 성실하게 참석하여 충분히 토의를 해달라고 부탁하고, 법정에도 배신원들이 싫어할 만큼 자주 얼굴을 내밀었다. 황제한테는 그밖에도 중요한 임무가 있지 않느냐는 사람들의 비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법률을 공정하게 집행하는 데 신경을 썼다. 성심성의껏 황제의 임무에 충실했지만 클라우디우스의 성격에는 부하들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면이 없었다. 바꿔 말하면 얕잡아 보이기 쉽다는 뜻이다. 그 결과 노예 출신 비서관들은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상대가 클라우디우스라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은 비서진만이 아니라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결국 아내 아그리피나의 야망에 희생되어 63세에 세상을 떠났다.

 
<네로>

안티 크리스찬으로 후세에 유명세를 타게 되는 그는 책의 부제에서처럼 악명 높은 황제였을까?
그리스 문화에 심취했던 예술가, 그의 과실은 로마 황제의 가장 중요한 책무인 국민의 '안전'과 '식량'을 보장하는 것인데 네로가 '안전'을 실제로 맡고 있는 군대도 통제하지 못하는데다 '식량'을 보장하는 데에도 무신경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 아니었을까?

p.589
 네로의 무덤에는 철마다 꽃이나 과일을 바치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꽃과 과일이 늘 싱싱하고 양도 많은 것을 보면, 바치는 사람이 아크네나 유모만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로마의 서민들도 죽은 네로에게 동정적이었다. 황제였다는 사실만 잊어버리면, 네로는 기발한 이벤트를 베풀어주는 유쾌한 젊은이였다. 그리고 선정과 전혀 인연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선정을 베풀긴 했지만 그게 지속되지 않았을 뿐이다. 물론 선정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는 지도자에게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긴 하지만.

 네로를 마지막으로, 아우구스투스를 시조로 하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는 무너졌다. 100년동안 지속된 뒤 무너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왕통의 단절이 아니라, 아우구스투스가 창조한 '교묘한 속임수'로서의 제정이 붕괴된 것을 의미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p.593
 하지만 권력이란 아무나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권력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거나 권력을 사용할 용기가 없는 사람은 권력이 있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경우에 고개를 쳐드는 것이 바로 공식적인 규정이다. 원로원과 시민들이 권력 위임을 철회하고 군단이 충성 서약을 거부하면, 이제까지의 황제도 한순간에 보통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네로의 말로가 그 전형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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