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애 류성룡 위대한 만남

● 송복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채 신채호 선생의 말이 아니더라도 역사의 중요성은 재차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되풀이되는 역사를 보며 왜 우리는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가 안타까운 마음이다.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을 비롯한 그의 저술 역시 선대의 전철을 철저히 징계하고 후대의 후환을 철저히 경계시키고자함이나 그 뜻을 헤아리고 실천하는 후대는 얼마나 있을까.


<서애 류성룡 위대한 만남>의 저자는 이 책을 쓰는 두 가지 이유를 아래와 같이 밝혔다.
- 하나는 오늘날 한반도의 분한은 언제부터 시도되었는가 이고, 다른 하나는 그 분할획책을 누가 어떻게 막았는가 이다. 앞의 것은 한반도 분할의 원류를 캐는 것이고, 뒤의 것은 그 분할획책을 최후까지 막은 인물의 능력과 리더십을 보는 것이다. 조선분할과 리더십연구가 핵심이다.

-(p.3) 

- 조선을「할지割地해서 4도를 내놓아라」는 왜倭의 이 엄청난 요구는 토요툐미 히데요시가 왜 조선을 침략했는가에서부터 보아야한다. 그가 왜 1952년에 조선을 쳐들어 왔는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고, 그 많은 설중에서 아직도 의견이 일치된 정설은 없다. 그렇다 해도 대체로 그 설들은 세개로 압축된다. 하나는 도요토이 히데요시의 공명심과 정복욕이고, 또 하나는 그의 부하들(그들은 제후諸侯라고 불렀다)에게 나눠줄 영지의 필요성이고 그리도 또 하나는 그들 국내에 계속 증강돼 온 강력한무력들을 해외에 방출해서 신흥세력의 성장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중략)…
그렇다면 히데요시의 침략 이유는 그의 공명심과 정벌욕, 그리고 무엇보다 조선「할지割地」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입증하는 것으로 일본 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자료는 히데요시가 일본내의 주고쿠中國지방을 평정한 뒤 그의 구준인 오다 노부타가에게 보낸 글이다. 이 글의 요지는 「규슈를 다시 평정한 뒤, 그 병사로 곧바로 조선을 정벌하고, 나아가 명의 400여 주를 석권하여, 활국의 판도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쓴 것이 1577년이고, 이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5년 전이다. 이미 그때부터 그는 조선침약은 물론, 심지어는 명까지 정벌하겠다는 야욕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침략이 구체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7년 전인 1585년 7월, 히데요시가 관백으로 취임하고 나서부터로 보아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히데요시의 정벌욕과 조선할지割地」는 구분되는 두개가 아니라 하나이고, 명까지 석권한다는 그의 큰소리도 실은 조선할지」가 조선과의 대결이 아니라 명과의 대결리아는데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명 400여주를 석권한다」는 그의 큰 소리는 실제로 명을 정벌한다는 것이 아니라 조선을 흥정하기 위한 명과의 협상용 발언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 조선은 「명의 속국屬國」이고, 따라서 조선을 흥정하는 협상의 주최는 어디까지나 명이기 때문이다.

 -(p.322)


-1593년 2월, 제독 이여송은 평양으로 돌아가 주둔했다. 명목은 카토오 키요마사가 아직 함경도에 있고, 평양은 근본이 되는 땅으로, 이곳을 지키지 못하면 돌아갈 곳이 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우리 측의 명군 접반사 이덕형에게 일러 「조선군은 지금 형세도 외롭고 원군도 없으니」명군따라 모두 임진강 이북으로 철수하라고 명령했다.
…(중략)…
이에 류성룡은 이여송에게 급히 글을 보내 「군사를 절대로 물려서는 안되는 다섯가지 이유를 명백히 밝힌다.」
…(중략)…그 첫째의 이유는 유교국가에서 으레 말하는 「선왕 분묘를 지키는 일」이다. 선왕의 분묘들이 모두 경기도에 있는데 이를 왜가 몽땅 점령하고 있어, 「신과 사람이 다 함께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고, 그래서 차마 버려둘 수 없다」는 이유다. 이는 근래까지만 해도 「부모님전상서」에 「기체후 일향만강 하오십니까」정도의 예의이고, 다른 것이 회복되면 이는 자동적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따라서 핵심은 그 다음 이유에 있다. 이를 하나 하나 원문 그대로 보면,

㉠ 경기 남쪽에 남아 있는 백성들은 명군이 갑자기 물러갔다는 말을 듣게 된다면, 나라를 다시 굳게 지킬 생각이 없어져 적군에게로 귀의하게 될 것이다.

㉡ 우리 강토의 땅은 한자 한치도 적에게 쉽게 넘겨줄 수 없다.

㉢ 우리 장수와 군가들은 명군에 의지하여 함께 진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제 명군이 물러나 버리면 원통하고 분개해서 모두 흩어져 버릴 것이다.

㉣ 명 대군이 물러가면 후방은 모두 빈다. 그 빈틈을 적이 쳐들러오면 임진강 이북 지역도 보전하지 못한다.

-(p.296)

-당시 사람들이 이원익과 류성룡을 대비해서 하는 말 중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이원익은 가히 속일 수 있으나 차마 속일 수 없고, 류성룡은 속이려 해보아도 속일 수 없다.」이원익은 그만큼 순수하고 진실했다는 것이고, 류성룡은 그만큼 성실하고 명민했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사람은 아무리 유능해도 순수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고, 후자의 경우 사람이 아무리 명민해도 성심을 다하고 있지 않으면 얼마든지 거짓을 꾸며댈 수 있다. 인간은 영악한 동물이어서 얼마든지 남을 사기할 수 있지만, 지극한 「순수」, 지극한 「성심」앞에서는 마치 유리판에 구슬 구르듯 그 거짓이 굴러 나온다는 것이다. -(p.424)

공! 감! 구! 절!


- 조선조가 어째서 그토록 오래갔느냐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 …(중략)… 정치사회학적인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사회경제적 빈곤,그것은 절대 빈곤이다. 사회경제적 빈곤은 정치적 인물과 정책의 빈곤을 가져오고, 그 빈곤은 사회 모든 기능에서 다이내미즘dynamism을 잃게 한다. 다이내미즘의 상실은 곧 바로 정체로 이어지고, 정체는 오늘날 북한처럼 장기집권을 가능케 한다.
사회가 활력을 잃으면 잃을수록, 다른 말로 빈곤하면 빈곤할수록, 정권을 바꿀 에너지가 사회내부에서 생성되지 못한다. 반면 정권은 일정한 무력의 소지로 어떤 농민반란도 진압할 수 있다.

-(p.80) 

-역사에서 「가정 假定」은 의미가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만일 그렇지 않았더라면의 if not 방식」으로 역사를 「되돌아 보는 것」만큼 역사에서 더 많은 교훈을 얻는 방법도 드물다.
반대로 역사를 가정假定없이 「있었던 사실의 기록」만으로 이해하고 성찰해야 한다면, 그 이해와 성찰이 지금 이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조망하는데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미상불 역사의 이해든 현실의 이해든, 그 경우 그 이해의 폭은 더없이 좁아지고, 그 깊이는 더없이 얕아질 것니다.

-(p.254) 

- 조선사의 최대 미스테리는 왜 당시 조신朝臣들은, 그리고 재야의 선비들(지식인들)은 그토록 「자강自彊」을 향한 질문이 없고, 욕구가 없고, 고민이 없었을까이다. 왜로부터 명으로부터 청으로부터 그토록 학대받고 시달리고 짓밟히면서도, 어떻게 그토록 자기 반문이 없고 자기 몸부림이 없었을까이다. 어째서 왜는 그렇게 강하고, 어째서 청은 그 작은 소수민족으로 일어나서 대국 명을 무너뜨리고 마침내 중원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을까, 어째서 거기에 대한 치열한 자기 물음이 없고 자기도 일어서야겠다는 강렬한 자기 분기, 격렬한 가장에의 의지가 그토록 없었을까이다. 

 -(p.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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